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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강원권 소류지 탐사 ... 추석 (秋夕) ... 10.5 ~ 10.7 ...
    작성자 오상권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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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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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12

     




     

    ▶ 강원 홍천 홍천강에서 ... ◀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




    가을의 전령사 비짜루국화가 예쁘게 피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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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이 좋은 산국도 예쁘게 피어있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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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개천절, 추석, 대체공휴일, 한글날 등 10일간의 황금만큼이나 값진 연휴다.

     

     

     

    개천절 (開天節) ...

     

     

    정의 ...

     

    우리 민족 최초 국가인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

     

     

    내용 ...

     

    10월 3일. 서기전 2333년(戊辰年), 즉 단군기원 원년 음력 10월 3일에 국조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개천절은 ‘개천(開天)’의 본래의 뜻을 엄밀히 따질 때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

    이 보다 124년을 소급하여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환웅(桓雄)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上元甲子年: 서기전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개천절은 민족국가의 건국을 경축하는 국가적 경축일인 동시에, 문화민족으로서의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적 명절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전통적 명절을 기리는 행사는 먼 옛날부터 제천행사를 통하여 거행되었으니,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맥의 무천(舞天) 등의 행사는 물론이요, 마니산(摩尼山)의 제천단(祭天壇),

    구월산의 삼성사(三聖祠), 평양의 숭령전(崇靈殿) 등에서 각각 행해진 제천행사에서 좋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우리 민족은 10월을 상달[上月]이라 불러,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햇곡식으로 제상을 차려 감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천행사를 행하게 되는 10월을 가장 귀하게 여겼고, 3일의 3의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겨 왔다는 사실은

    개천절의 본래의 뜻을 보다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명절을 개천절이라 이름짓고 시작한 것은 대종교(大倧敎)에서 비롯한다.

    즉, 1909년 1월 15일서울에서 나철(羅喆: 弘巖大宗師)을 중심으로 대종교가 중광(重光: 다시 敎門을 엶)되자,

    개천절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행사를 거행하였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개천절 행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특히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여 경하식을 행했고, 충칭(重慶) 등지에서도 대종교와 합동으로 경축행사를 거행하였다.

     

    광복 후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계승하여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식 제정하고, 그때까지 경축식전에서 부르던

    대종교의 「개천절 노래」를 현행의 노래로 바꾸었다.

     

    개천절은 원래 음력 10월 3일이므로 대한민국 수립 후까지도 음력으로 지켜왔는데, 1949년에 문교부가 위촉한

    ‘개천절 음·양력 환용(換用)심의회’의 심의결과 음·양력 환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와 ‘10월 3일’이라는 기록이

    소중하다는 의견에 따라, 1949년 10월 1일에 공포된「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음력 10월 3일을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거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종교에서 행하던 경하식은 국가적 행사에 맞추어 양력 10월 3일에 거행하고,

    제천의식의 경우만은 전통적인 선례에 따라 음력 10월 3일 상오 6시에 행하고 있다.

     

    이 날은 정부를 비롯하여 일반 관공서 및 공공단체에서 거행되는 경하식과 달리, 실제로 여러 단군숭모단체(檀君崇慕團體)들이

    주체가 되어 마니산의 제천단, 태백산의 단군전,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의 백악전 등에서 경건한 제천의식을 올리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대종교요감』(대종교총본사간, 1983)

    『대종교중과육십년사』(대종교총본사간, 197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산국과 빗짜루국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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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秋夕) ...

     

     

     

    정의 ...

     

    음력 8월 15일로, 명절의 하나.

     

     

    개설 ...

     

    가배·가위·한가위 또는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한다.

    이 때는 농경민족인 우리 조상들에 있어 봄에서 여름 동안 가꾼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 수확을 거둘 계절이 되었고

    1년 중 가장 큰 만월 날을 맞이하였으니 즐겁고 마음이 풍족하였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아서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므로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이었으니,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한가위 날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였다.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고 <회소곡 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오랜 전통이 있는 추석명절에는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추석이 되면 조석으로 기후가 쌀쌀하여지므로 사람들은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한다.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가정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 벌씩 해준다.

     

    추석날 아침 일찍 일어나 첫 번째 일은 차례를 지내는 일이다.

    주부에 의해서 수일 전부터 미리 준비한 제물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낸다.

    이 때에 설날과는 달리 흰 떡국 대신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고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이다.

    가을 수확을 하면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한 다음에 사람이 먹는데 추석 차례가 천신을 겸하게 되는 수도 있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에 앞서 낫을 갈아 가지고 산소에 가서 풀을 깎는 벌초를 한다.

     

    여름동안 자란 풀이 무성하고 시들어 산불이라도 나면 무덤이 타게 되므로 미리 풀을 베어주는 것이다.

    어쩌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은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

     

    추석은 공휴일로 제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교통혼잡을 이루고 도시의 직장들은 쉬게 된다.

    이처럼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기 위해서이다.

    추석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못 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자손이 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 나라 사람의 의식구조이다.

     

     

    추석 놀이 ...

     

    추석 무렵은 좋은 계절이고 풍요를 자랑하는 때이기에 마음이 유쾌하고 한가해서 여러 놀이를 한다.

    사람들이 모여 농악을 치고 노래와 춤이 어울리게 된다.

     

    농군들이 모여 그 해에 마을에서 농사를 잘 지은 집이나 부잣집을 찾아가면 술과 음식으로 일행을 대접한다.

    먹을 것이 풍족하니 인심도 좋아서 기꺼이 대접을 한다.

    이렇게 서너 집을 다니고 나면 하루가 간다.

     

    농군들이 마을을 돌면서 놀 때에 소놀이·거북놀이를 하게 된다.

    소놀이는 두 사람이 멍석을 쓰고 앞사람은 방망이를 두개 들어 뿔로 삼고, 뒷사람은 새끼줄을 늘어뜨려 꼬리를 삼아

    농악대를 앞세우고 이집저집 찾아다닌다.

    일행을 맞이하는 집에서는 많은 음식을 차려 대접한다.

    마당에서 술상을 벌이고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면서 한때를 즐긴다.

     

    이때에 소도 춤추는 시늉을 하면 사람들은 웃고 놀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소놀이를 할 때 마을에서 일을 잘하는 머슴을 뽑아 농우에 태워서 마을을 누비고 다니는 일도 있다.

    여름 동안 수고가 많았으므로 위로하는 것이고 영광을 안겨주는 일이 된다.

    상머슴으로 뽑히면 일을 잘하였기 때문에 다음해에 많은 새경을 받게 된다.

     

    거북놀이는 두 사람이 둥근 멍석을 쓰고 앉아 머리와 꼬리를 만들어 거북이시늉을 하고 느린 걸음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큰 집을 찾아가 “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음식을 청하고

    들어가면 주인은 음식을 내어 일행을 대접한다.

    놀이는 소놀이와 비슷하다.

     

    한 집에서 잘 먹고 난 다음 다른 집을 찾아간다.

    이때에 얻은 음식을 가난해서 추석음식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도 있어 협동과 공생(共生)의 의식을 보이기도 한다.

    소놀이와 거북놀이는 충청도·경기도 등에 전승되고 있다.

     

    또, 마을사람들은 모여 줄다리기도 하였다. 한 마을에서 편을 가르거나 몇 개 마을이 편을 짜서 하거나

    또는 남녀로 편을 갈라서 하는 일도 있다.

    줄의 크기나 편의 규모는 일정하지 않고 많을 때에는 수천 명에서 작을 때에는 수십 명이 모여서 하는 수가 있으나 집단을 이루며,

    줄의 큰 것은 줄 위에 올라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큰 경우도 있다.

     

    큰 줄을 만들려면 볏짚이 많이 필요하므로 각 집에서 짚단을 제공하고 수천 단을 들여서 만드는 일도 있다.

    만든 줄을 줄다리기 장소로 옮길 때에 너무 커서 들고 가지 못하면 근래에는 트럭에 싣고 가거나 끌고 가는 일도 있다.

    줄다리기의 승부는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경의례의 하나로 여겨, 암줄이 이기면 풍년이 드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줄다리기는 상원에 주로 하지만, 추석 때와 단옷날에 하는 곳도 있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씨름판을 벌이는데, 어린이들은 아기씨름을 하고 장정들은 어른씨름을 한다.

    잔디밭이나 백사장에서 구경꾼에 둘러싸여 힘과 슬기를 겨루게 된다.

    씨름에서 마지막 승리한 사람에게는 장사라 부르고 상으로 광목, 쌀 한 가마, 또는 송아지를 준다.

     

    궁사(弓士)들은 활쏘기도 한다.

    사정(射亭)에 모여 일정한 거리에 과녁을 만들어놓고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경기이다.

    활쏘기는 상무정신을 기르게 하고 심신을 단련하게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마음을 통일시키지 못하면 과녁을 맞출 수가 없기에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쏘아야 한다.

    여러 궁사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쏘아 과녁에 맞으면 ‘지화자’ 노래를 부르면서 격려하고 축하를 해준다.

     

    전라남도 서남해안지방에서는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놀이를 즐긴다.

    추석날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달이 솟을 무렵 젊은 부녀자들이 넓은 마당이나 잔디밭에 모여

    손과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뛰고 춤춘다.

     

    노래는 처음에 진양조로 느리게 부르다가 차츰 빨라져서 나중에는 마구 뛰게 된다.

    노래 장단에 따라 춤동작이 정하여진다.

    만월 아래 추석빔으로 곱게 단장한 젊은 여인들의 원무(圓舞)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강강술래놀이는 원무를 하는 외에 여러 놀이가 첨가되어 다양하게 전개되는 수도 있다.

    곧, 손을 잡고 일렬로 서서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다음 사람의 팔 밑으로 꿰어 가는 고사리꺾기가 있다.

     

    또 일렬로 서서 맨 끝에 있는 사람이 맨 앞에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면서 덕석(멍석)을 말 듯이

    몇 번이고 도는 대로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는 덕석몰이, 원을 그리면서 춤추는 중앙에 한 사람 혹은 두세 사람이

    뛰어들어가 두 손을 내두르며 뛰고 춤추는 남생이놀이,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마주서서 문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문 밑을 빠져나가는 문열기 등 여러 가지 놀이가 행해진다.

     

    놀이방법이 변함에 따라 불려지는 노래의 가사도 달라진다.

    이 놀이는 일설에는 이순신(李舜臣)이 창안하였다고 하나, 원시시대에 1년 중에서 가장 밝은 만월을 맞이하여

    놀이하던 원무를 이순신이 의병술(擬兵術)로 채택해서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격퇴하는 데 썼던 것으로 해석된다.

     

    추석명절에는 옛날의 서당에서는 훈장이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집으로 가기 때문에 공부를 며칠 쉬게 된다.

    모처럼 글공부에서 해방된 학동들은 모여서 놀이를 하는데, 그 중에는 가마싸움과 원놀이가 있다.

    학동들이 모여 나무로 가마를 만들어 바퀴를 달고 이웃 마을의 서당과 경기를 한다.

     

    서로 가마를 가지고 넓은 마당에 모여 가마를 끌고 뛰어나와 상대편 가마와 부닥치게 한다.

    몇 번을 되풀이하면 가마가 망가지게 되는데, 먼저 망가진 편이 지고 아무리 부닥쳐도 가마가 성하면 이기게 된다.

    평상시에 앉아서 글만 읽던 학동들에 있어서는 활달한 놀이였다.

    원놀이 역시 훈장이 없는 사이에 학동들에 의해서 행해진다.

     

    글을 잘하고 오래 배웠으며 재치 있는 사람을 뽑아 원님으로 하고, 학동 중에서 소송을 하는 사람과 소송을 당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원님이 판관이 되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놀이니 오늘날의 모의재판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서 관원이 되면 판관으로서 민원을 처리하고 백성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사리를 따져서 정(正)과 사(邪)를 구분할 줄을 알아야 한다.

     

    판관의 예행연습을 원놀이에서 미리 하였던 것이다.

    소송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여 판관이 좀처럼 판결하기 어렵도록 한다.

    그러나 가부간에 판관으로서는 판결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지혜를 짜내어 판단을 하여야 하였다.

     

    유식한 문자를 쓰고 고사(故事)를 예로 들고 사실(史實)을 제시하여 누구든 납득할 수 있는 명판결을 해서

    후세에 일화를 남긴 민담(民譚)도 전래되고 있다.

    원놀이는 서당의 학동으로서는 품위 있고 학술연마도 되며 지혜를 연마하는 알맞은 놀이였다.

     

    남도지방에서는 닭싸움과 소싸움을 즐기는 일도 있었다.

    싸움을 잘하는 수탉을 길러서 싸움을 시키는데, 수탉의 힘이 세 지라고 고기를 먹이는 일도 있다.

    닭이 싸울 때는 부리로 상대 닭을 찍고 물고 늘어지는데, 볏에 유혈이 낭자한데도 지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서로 찍으려고 몸을 부닥치고 높이 뛰어서 상대편 볏을 노린다.

     

    닭싸움에 지면 그집 마당에 놀러가지도 못하고 암탉도 빼앗기기 때문에 사투를 한다.

    닭싸움을 구경하며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내기를 하는 일도 있다.

    소싸움은 넓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고 황소의 고삐를 풀어 두 마리를 넣어두면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노려보다가 앞발로 땅을 긁어 흙을 파헤치면 성낸 표시가 되고, 서로 머리를 대고 비비고 뿔로 받고 밀치고 한다.

     

    뒤로 물러섰다가 부닥치는 소리가 “쿵!” 하고 크게 나서 힘과 힘의 대결임을 알 수가 있어 장관을 이룬다.

    힘과 끈기와 투지의 대결로 한없이 밀리거나 뿔로 심하게 받혀서 부상을 하면 도망치는데, 하나가 도망하면 승부가 난다.

    소싸움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는 한편 내기를 하는 일도 있다.

     

    농촌의 소년들 사이에는 콩서리를 하는 일도 있다.

    콩을 통째로 꺾어다 불을 피운 속에 넣어두었다가 익으면 꺼내어 먹는데 맛이 별미이다.

    밭 콩보다는 논두렁 콩이 더 맛이 있어 초가을에 흔히 한다.

     

    제주도에서는 조리희(照里戱)가 있었다고 ≪동국세시기≫에 전한다.

    남녀가 모여 노래부르고 춤을 추면서 놀았으며, 패를 짜고 큰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줄이 중간에 끊어지면 모두 주저앉게 되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고 한다.

    한편, 그네를 뛰고 닭잡기 놀이(捕鷄之戱)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민간신앙적 행사 ...

     

    추석 전날 밤에 전라남도 진도(珍島)에서는 사내아이들이 밭에 가서 벌거벗고 고랑을 기어다니는 풍속이 있다.

    밭둑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토지신을 위하는 일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밭곡식이 풍년들어 많은 수확을 올릴 뿐 아니라

    아이들의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건강하여진다고 믿고 있다.

    일종의 농업주술(農業呪術)과 건강을 축원하는 행위이다.

     

    추석 무렵에 올게심니를 하는 풍속이 있다.

    그해의 농사에서 가장 잘 익은 곡식으로 벼·수수·조〔粟〕 등의 목을 골라 뽑아다가 묶어서 기둥·방문 위나 벽에 걸어놓는다.

    올게심니를 해놓으면 그 곡식들이 다음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으며, 이 때에 떡을 하고 술도 빚고 닭도 잡아서 소연을 베푸는 수도 있다.

     

    올게심니를 하였던 곡식 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지를 않으며 다음해에 종자로 쓰거나 다음해에 새로 올게심니를 할 때에

    찧어서 밥이나 떡을 해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하기도 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행위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이 합하여진 행위이다.

     

    부엌의 부뚜막에는 조왕(竈王)이 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왕은 불을 담당하고 재산을 담당하기도 한다.

    속설에 조왕은 섣달 스무 닷샛 날에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1년 동안 집안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그믐날에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한다.

    각 가정에서는 조왕을 모시기 위하여 사발에 물을 떠서 밥솥 뒤쪽에 놓아두고 위하는데,

    특히 추석날에는 조왕을 위하여 정화수를 갈아준다.

     

    부지런하고 신앙심이 두터운 아낙네는 매일 물을 갈아놓는 일도 있고, 초하루와 보름날 두 번 갈아주는 집도 있다.

    추석을 전후해서 햇곡식이 나오면 장독대에 정한 짚을 깔고 떡·미역국·무나물·배추나물·고기·탕을 차려놓고 비는데,

    이를 성주모시기라 한다.

    방에 차려놓는 일도 있고 또는 장독대에 차려놓고 빈 다음 방으로 옮겨서 다시 빌기도 한다.

     

    성주는 가신(家神) 중에서 어른에 속하고 주인의 명복(命福)과 관계가 있어 소중하게 모신다.

    어촌에서는 추석에도 상원 때와 같이 뱃고사를 지낸다.

    선주네 집에서 음식을 차리고 집에서 지내는 일도 있고, 배에다 기를 달고 등불을 밝히고 배서낭을 위하는 일도 있으며,

    또는 음식을 차려 바다에 나가서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뱃고사를 지내는 이유는 바다에 나가 풍랑을 만나지 말고 만선(滿船)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바다생활은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많은 고기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믿고 있어,

    무당을 불러 며칠을 두고 큰굿을 하는 일도 있다.

     

    그밖에 추석날의 일기를 보아 여러 가지로 점을 친다.

    추석날은 일기가 청명해서 밝아야 좋다.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고 해서 불길한 징조로 삼고 있다.

    밤에 구름이 끼어 달빛을 볼 수가 없으면 보리와 메밀이 흉년이 들고, 토끼는 포태(胞胎 : 임신)를 못해서

    번식을 못하고, 개구리가 새끼를 까지 못한다고 전한다.

     

    추석날 밤에 흰 구름이 많이 떠서 여름에 보리를 베어서 늘어놓은 것처럼 벌어져 있으면 농작물이 풍년이 들지만,

    구름덩이가 많거나 구름이 한 점도 없으면 그 해의 보리농사는 흉년이 들 징조라고 해석을 한다.

    경상남도지방에서는 8월에 들어 창문을 바르지 않는데, 특히 추석을 전후해서 문을 바르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문이 찢어져 있으면 바람이 들어와서 시원하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가 7월에는 일단 창호지로 문을 바른다.

    그러나 8월 달에 들어와서는 찢어진 문구멍을 새로 바르는 것이 금기(禁忌)로 되어 있다.

    금기를 어기면 도적을 맞는 일이 생기고 집안에 우환이 들끓게 된다고 전한다.

    그래서 찬바람이 들어와도 그냥 두었다가 9월에 들어서야 문을 바른다.

     

     

    추석 절식 ...

     

    추석에는 시절(時節)에 맞는 여러 음식이 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설날의 음식과 별 차이는 없다.

    다만 추수의 계절이라 햇곡식으로 밥·떡·술을 만든다.

     

    철이 이르면 추석 차례에 햇곡식을 쓸 수가 있고, 철이 늦으면 덜 익은 벼를 베어서 찧은 다음 말렸다가 방아를 찧어서 햅쌀을 만들어 쓴다.

    철이 늦은 해에는 미리 밭벼〔山稻〕를 심었다가 제미(祭米)로 쓰는 일도 있다.

     

    어떻든 추석 차례에 대비해서 농사를 짓는다.

    햅쌀로 밥을 지으면 맛이 새롭고 기름기가 있으며 떡도 맛이 있다.

    추석 떡으로는 송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올벼로 만든 송편이라 해서 올벼송편이라는 말이 생겼다.

    송편 속에도 콩·팥·밤·대추 등을 넣는데, 모두 햇것으로 한다.

    모두 햇곡식이기 때문에 더욱 맛이 있다.

     

    열 나흗날 저녁 밝은 달을 보면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든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잘못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 해서

    처녀·총각들은 예쁘게 만들려고 솜씨를 보인다.

     

    또, 태 중인 부인이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할 때에는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 넣고 찐 다음

    한 쪽을 깨물어서 바늘의 귀 쪽이나 솔잎의 붙은 곳을 깨물면 딸을 낳고 바늘의 뾰족한 곳이나 솔잎의 끝 쪽을 깨물면

    아들을 낳을 징조라고 점을 치는 일도 있다.

     

    제사를 지내려면 술이 꼭 있어야 하는데, 추석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여 햅쌀로 빚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 이름하였다.

    술을 많이 준비하여야만 이웃 사이에 서로 청하여 나누어 마시고, 소놀이패·거북놀이패들이 찾아왔을 때

    일행을 후하게 대접할 수가 있다.

    남성의 접빈객(接賓客)은 첫째가 술인 만큼 술을 넉넉히 마련한다.

    우리네 잔치에는 술만 풍족하면 되었다.

     

    혼인·환갑·장례·명절 때에는 손님 중에 술에 취해서 몇 사람쯤 쓰러져 있으면 그 집 잔치 잘하였다고 할만큼

    술은 손님대접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된다.

    추석 때면 풍년도 짐작되기 때문에 인심이 후해서 술대접을 서로 하게 된다.

    추석에는 황계(黃鷄)를 빼놓을 수가 없다.

    봄에 깬 병아리를 기르면 추석 때에는 성숙해서 잡아먹기에 알맞다.

     

    명절에 맞추어 길렀다가 추석에 잡아서 쓰게 된다. 또 옛날에는 명절에 어른에게 선사하는 데 닭을 많이 썼다.

    친정에 근친(覲親)하는 딸이 닭이나 달걀꾸러미를 가지고 갔으며, 경사가 있을 때에도 닭을 선사하였으며,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손쉬운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 그 예이다. 추석에 백주와 황계는 좋은 술과 안주였다.

     

    가을 과일로는 감·밤·대추·호두·은행·모과 등이 전래의 것이고, 요즈음에는 사과와 배가 첨가되었다.

    밤·대추·곶감은 제물(祭物)로 필수이어서 가을에 알밤을 말려 두었다가 쓴다.

    추석 때의 풋밤은 제상에도 오르거니와 밥과 송편에도 넣고 단자(團子)를 만들기도 한다.

     

    대추는 단맛이 있어 여러모로 쓰였고 약식에도 넣었으며 약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호두·은행은 값이 비싸므로 두었다가 상원날 부럼에 쓰기도 한다.

    모과는 약으로 쓰거나 차(茶)로 쓰이고, 술로 담그기도 한다.

     

    녹두나물과 토란국도 미각을 돋우는 절식(節食)의 일종이다.

    녹두나물은 소양(消陽 양을 쇠하게 함.)한다고 하지만 잔칫상에 잘 오르고, 토란은 몸을 보 한다고 해서 즐긴다.

     

    추석 때면 농가도 잠시 한가하고 인심도 풍부한 때이므로 며느리에게 말미를 주어 친정에 근친을 가게 한다.

    떡을 하고 술병을 들고 닭이나 달걀꾸러미를 들고 친정에 근친을 가서 혈육과 회포를 푸는 기회를 가진다.

    근친을 갈 수가 없는 경우에는 반보기를 한다.

     

    이는 친정과 미리 통문을 해서 친정과 시집 중간의 경치 좋은 곳을 정하여, 딸은 친정어머니가 즐기는 음식을 마련하고

    친정어머니는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해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이것을 중로회견(中路會見) 또는 중로보기·반보기라고 한다. 전라남도 강진지방에서는 한 마을의 부녀자들이

    집단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하루를 놀고 즐기는 것을 반보기라 부르기도 한다.

     

    추석 무렵의 생산력(生産曆)을 작업별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농업 : 벼 베기, 콩·팥·수수·고구마 거두어들이기, 퇴비하기, 무·배추 갈기, 밭 골타기, 목화·담배잎·고추 따기,

    밀·메밀·양파·시금치 파종하기, 거름내기, 누에치기, 논둑 고치기, 겨울나무 준비하기, 담장 수리하기,

    병아리 깨기, 길쌈하기, 과일 저장하기, 곶감 말리기, 약초 캐기,

    ② 어업 : 오징어·갈치·다랑어 잡기,

    ③ 임업 : 잔디씨 받기, 낙엽송씨앗대기 등이 있다.

     

    추석은 1년 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는 달의 명절로서, 농경민족으로서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여 풍년을 축하·감사하며

    조상에게 천신하고 성묘하여 추원보본을 하였고, 명절의 기쁨에 넘쳐 여러 가지 놀이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하였으며,

    신을 섬기고 풍·흉을 점복(占卜 : 점침.)하였다.

    풍부한 음식을 서로 교환해서 후한 인심을 보였고, 농한기를 이용해서 놀이하고

    근친(近親:친정에 가서 아버지를 뵘)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추석은 농경생활에서 추수감사와 조상에 보은하며 먹을 것이 넉넉함에 만족하여 온갖 놀이로 즐기는 명절로 전승되었으나

    공업생산시대에 들어와 그 절실함이 감소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추석 귀성은 여전하며,

    풍요에 감사하고 조상에 추원보본하는 추석의 원래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

    『동국세시기』

    『한국세시풍속연구』(임동권, 집문당, 1985)

    『한국농경세시의 연구』(김택규, 영남대학교출판부, 1985)

    [네이버 지식백과] 추석 [秋夕]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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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 ...

     

     

     

    정의 ...

     

    훈민정음(訓民正音)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이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었으며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또한 세종어제(世宗御製) 서문(序文)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것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록되었다.

     

     

    유래 ...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25년 곧 서기 1443년에 완성하여 3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세종 28년인 서기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되었다.

    한글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주도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인데 지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세계 문자 역사상 그 짝을 찾을 수가 없다.

     

    한글만큼 우수한 문자가 또 없다는 것을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한글의 창제로 말미암아 우리는 문자가 없어서 남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다가 우리말을 중국말 문법에 맞추어 쓰던

    불편을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문화, 경제, 정치 등 각 분야에 걸친 발전을 이루어

    세계 유수한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한글날은 이러한 한글의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과 공로를 기리는 날이다.

     

     

    내용 ...

     

    한글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우리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1926년의 일이다.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곧 오늘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 29일(양력으로 11월 4일)을 가갸날이라 하고,

    그날 서울 식도원(食道園)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 시초이다.

    이 해는 한글이 반포된 지 8회갑인 480년이 되던 해였다.

     

    당시는 우리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억압에 눌려서 위축되어 있던 때라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한글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기로 했던 것이다.

     

    음력 9월 마지막 날인 2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세종실록(世宗實錄)』 28년(1446) 9월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라고 한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며,

    이름을 가갸날이라 한 것은 그때 아직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하지 않았고, 한글을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였기 때문이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언문,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러 오던 훈민정음을 1910년대에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 쓰임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꾼 해는 1928년이었다.

    1931년에는 그동안 음력으로 기념해오던 한글날을 양력으로 고치기로 하고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했다.

    그러나 이 환산 방법에 의문이 생겨 1446년의 음력 9월 29일을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쓰던 그레고리력으로 다시 환산한 결과

    10월 28일과 일치하여 이날을 한글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그러던 중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었는데, 서문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정인지가 썼다고 기록되어 있어 훈민정음, 곧 한글을 반포한 날이 좀 더 확실하게 밝혀졌다.

    그러나 이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여러 가지 통제가 심했던 까닭에 기념을 할 사정이 못 되었다.

     

    한글날을 양력 10월 9일로 확정한 것은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고 나서였다.

    곧 ‘정통 11년 9월 상한’의 ‘9월 상한’을 9월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 10일로 잡고 그것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1946년에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여 거국적인 기념 행사를 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한글날 기념 행사는 민족주의 국어학자를 비롯한 소수 유지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졌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한글날 행사가 전국적인 것이 되어 해마다 큰 기념식을 하였다.

     

    1970년 대통령령으로 공포된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에서 관공서의 공식 공휴일이 되었다.

    한글날은 한동안 법정공휴일의 지위를 잃는 불운을 겪기도 하였다.

    1990년에 휴일이 많은 것은 산업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경제 단체의 문제 제기가 있어 법정공휴일 축소 문제가 논의되었고,

    그해 8월에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군의 날과 더불어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하기로 의결,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되었다.

     

    그러나 한글 관련 단체의 꾸준한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의 결과로 2005년 12월 29일에 국회에서

    ‘국경일에관한법률’을 개정하여 2006년부터 한글날이 국경일로 정해졌다.

     

    한글날 기념 행사는 광복 이전부터 한글학회가 주관해오다가 1957년부터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게 되었고,

    1981년에는 서울시, 1982년부터는 문화공보부(현재의 문화관광부)에서 맡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날은 정부 주관으로 삼부(三府)의 요인,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기타 문화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하고,

    국어의 연구와 발전, 해외보급에 공로가 있는 이들에게 훈포장을 주고 표창을 하는 한편,

    한글을 기리는 문화 공연, 전시회 같은 행사를 한다. 이와 별도로 민간 한글 관련 단체가 세종대왕 동상에 꽃바치기,

    국어학 학술대회 같은 행사를 한다.

     

     

    의의 ...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반포하기까지 우리에게 말은 있었으나 그것을 적을 글자는 없었다.

    말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다.

     

    말은 말을 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것을 들을 수가 없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글자이다.

    말을 글자로 적으면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나,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도 지식과 정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수가 있다.

     

    글자가 없으면 지식의 축적, 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어서 중국의 한자를 빌어다가 변형하여 쓰거나 그대로 썼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생각을 정확하고 세세하게 적을 수가 없어 일상생활은 물론 문화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이러한 장애를 걷어내기 위하여 세종대왕 같은 성군(聖君)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일반 백성이 쓰도록 하였으나

    문화를 주도하는 조선의 사대부 계층이 오랜 한자, 한문 생활에 젖어 한글 쓰기를 거부한 데 이어,

    연산군(燕山君) 때의 한글 탄압 이후로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자로 전락하였었다.

     

    그러다가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들이 한글에 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개화기에 이르러 황제의 칙명으로

    한글에 국문(國文)으로서의 지위를 주었다.

    이때부터 박영효,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과 같은 선각자들, 주시경과 같은 계몽적 국어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글은 공문서를 비롯한 각종 문서, 신문, 잡지에 널리 쓰게 되고, 이어서 일제강점기에도 민중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한글을 가르치고 한글맞춤법을 만들었으며 국어 문법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우리말의 말살 정책으로 큰 위기를 맞았었으나 광복과 더불어

    우리말과 한글을 마음 놓고 가르치고 배우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글이 오늘과 같이 확실하게 우리 글자로 자리를 잡기 전, 광복 직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부끄러울 정도로 문맹률이 극히 높았다.

    한자 또는 한문은 배우기가 어려워서 보편화되지 못했고, 한글은 배우기가 쉬웠으나 한글을 아는 것으로는

    밖에 나가 행세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가르치지를 않아서 아는 사람이 적었던 까닭이다.

     

    글을 모르고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고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의 향상, 문화의 향상을 도모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여러 분야의 학문적 발전을 고루 이루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이르러 일정한 국제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한글이라는 글자가 있어 동력원이 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여 한글의 창제와 그 우수성을 기리며, 그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며,

    한글과 국어의 발전을 다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참고문헌 ...

     

    世宗實錄

    金允經. 韓國文字及語學史. 東國文化社, 1954년

    한글학회50년사, 1971년

    金敏洙. 國語政策論, 1973년

    겨레의 글 한글, 2000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세시풍속사전 ...

     

     

     

     


    저수지 파노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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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몰나무가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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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계곡도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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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5일 ...

     

     

     

    목요일 ...

     

    오전 7시경 ...

     

     

    단풍이 붉게 물든 강변북로-경강로-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려 오늘 낚시를 할 강원도 홍천으로 향한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9월부터 낙엽이 떨어지는 11월 말까지 홍천강에는 대물 쏘가리와 꺽저기(꺽지)가 잘 잡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붕어낚시를 하는 조사가 갑자기 웬 쏘가리와 꺽저기 낚시냐?

    물론 쏘가리와 꺽저기 낚시만 하려고 가는 것은 아니다.

     

    생미끼(메뚜기, 돌고기, 납자루, 지렁이)를 끼워 낚시를 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씨알 좋은 월척붕어도 입질을 해주기 때문이다.

     

    저수지와 소류지, 홍천강 포인트를 돌아다니다보니 때가 때인지라 루어낚시를 하는 많은 조사님들이 벌써 텐트를 치고

    며칠째 장박낚시를 하고 있는 중이고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캠핑을 겸한 출조를 하신 조사님들도 많이 보인다.

     

    그 무수히 많던 홍천강의 멋진 포인트들은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있거나

    포클레인으로 깊게 고랑을 파고 큰 바위덩이로 진입로를 막아놓은 상태다.

    루어낚시를 하는 조사님들은 가벼운 짐을 꾸려 비포장 산길을 걸어간다고 하지만 대어낚시를 하는 필자는

    도저히 장짐을 이고지고매고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찌됐든 차가 진입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가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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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강 ...

    가족과 캠핑을 떠나온 조사님들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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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감자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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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부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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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강 파노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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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 곳의 포인트를 돌다보니 태양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어가고 어느새 시간은 오후 18시를 넘어선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아 작년 여름 낚시를 했던 포인트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포인트에 도착해보니 10여분쯤 되는 조사님들과 가족들이 낚시와 캠핑을 즐기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포인트 진입로가 막혀 있다 보니 그나마 막아놓지 않은 포인트로 모두 몰려 있나보다.

     

    서둘러 하룻밤 쉬어갈 텐트를 설치하고 물속에 좌대를 설치해 4.4칸에서부터 5.0칸까지 4대의 낚싯대를 편성하고

    설아찌에 불을 밝혀 싱싱한 지렁이 3마리씩을 끼워 낚싯대 편성을 마쳤다.

     

    한낮의 찌는 듯 한 더위와는 다르게 으스스 몸속으로 한기가 밀려들기 시작하고 겨울 파카를 꺼내 입고

    텐트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준비해간 닭을 삶아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낚시를 하던 포인트로 돌아왔다.

     

    물 흐름이 있는 곳이다 보니 찌는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혹시나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찌가 있나 좌대에 올라가 살펴봐도

    찌는 아무런 변화 없이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홍천강 수중보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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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해는 저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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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둘러 좌대를 설치하고 4.4에서부터 5.0칸까지 4대의 낚싯대를 편성하고 설아찌에 불을 밝혀 옥수수와 지렁이를 끼워

    포인트에 찌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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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속이 있는 포인트다보니 찌는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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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창 보일러를 켜놓은 따듯한 텐트로 들어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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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23시경 ...

     

     

    저녁을 먹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굶어서인지 다시 배가 고파오고 수창 의자보일러 2인용 캠핑 매트를 깔아놓은

    따듯한 텐트에 편하게 앉아 닭 국물을 데워 햇반을 넣고 반주를 곁들여 야식을 맛있게 먹고 따듯한 커피를 불어마시며

    텐트에 앉아 찌를 바라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5.0칸 찌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신호를 보내오고 후다닥 달려가 챔질을 하니

    뼘치쯤 되어 보이는 얼룩동사리가 첫수로 인사를 하고 연이어 이어진 입질에 고만고만한 얼룩동사리와 돌고기 몇 수를 만나다보니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새벽 2시를 넘어서고 으스스 밀려드는 한기와 조금씩 무거워지는

    눈꺼풀의 무게에 눌려 눈이 감겨오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 피곤한 몸뚱이를 좀 쉬어주고 동이 트는 새벽 시간을 노려봐야 될 것 같다.






    바다하늘산의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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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어낚시를 하는 조사님의 텐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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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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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꺽저기 (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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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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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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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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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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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긴밤 외롭지 않게 찾아와준 꺽지와 동사리, 돌고기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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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가리 루어낚시를 하는 조사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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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6일 ...

     

     

     

    금요일 ...

     

    새벽 5시경 ...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달콤한 단잠을 깨우며 텐트에 울려 퍼지고 졸린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나 텐트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아직도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 갇혀있고 고개를 내밀어 찌를 바라보니 찌들은 던져놓았던 포인트에

    오롯이 서서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따듯한 텐트 이불속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얼굴만 삐죽 내민 체 찌를 바라본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질 무렵 좌측 끝에 있던 4.4칸 찌가 한마디 두 마디 꼼지락거리더니 물속으로 빠르게 끌려들어가고

    후다닥 달려가 챔질을 하니 뼘치쯤 되어 보이는 돌고기가 대롱대롱 매달려나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참을 더 앉아있어 봤지만 더 이상 찌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고

    추석 전후로 먹은 술기운 탓인지 속도 쓰리고 아침이나 먹고 낚시를 해야 될 것 같다.

     

    즉석쌀국수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편하게 앉아 주변을 돌아본다.

     

    가족과 같이 캠핑을 겸한 출조를 하신 조사님들은 간밤의 추위 때문인지 아침부터 모닥불을 피우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아이들도 잠에서 깨어났는지 깔깔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출조 ...            ^^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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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딜가나 이놈의 쓰레기가 문제네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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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참 예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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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경 ...

     

    잔뜩 찌푸려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기는 했지만 잠깐 내리고 그칠 거라고 하더니 아침에 시작된 비는 해가 저물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고등어 김치찌개를 끓여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편하게 텐트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하루 종일 내린 빗줄기 때문에 유속은 더욱더 빨라지고 부유물까지 떠내려 와 낚시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몇 시간동안 찌를 바라봤지만 빗소리만 커졌다 작아졌다하며 텐트를 두드려대고 흐린 날씨 탓인지

    어둠은 더 빠르게 찾아와 밤이 되었음을 알린다.

     

    더 이상 기다려봐야 예쁜 녀석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아쉬움이 많이 남기는 하지만

    이제 그만 피로에 찌든 몸뚱이를 좀 쉬어주고 동이 트는 새벽 시간을 노려봐야 될 것 같다.

     

    따듯한 텐트에 누워 피곤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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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4시경 ...

     

     

    후드득 후드득 ~~~~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놀라 알람이 울리기도 전 잠에서 깨어났다.

     

    조금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빗줄기는 대지에 떨어져 내리고 밖을 내다보니 수면위에 물 동그라미를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다.

     

    철수를 하려면 텐트도 말라야 되고 짐을 정리하려면 비가 그쳐야 되는데 ...

     

    에구 ...          ㅡ.ㅡ;;


    뭔 노무 일기예보가 이 모양 이 다냐.






    억세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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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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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7시경 ...

     

     

    다행이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봐도 더 이상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고 햇살만 조금 비춰준다면 텐트도 금방 마를 것 같다.

     

    텐트 앞에 의자를 꺼내놓고 편하게 앉아 찌를 바라본다.

     

    정면 돌고기 치어를 끼워놓은 5.0칸 찌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신호를 보내오고 후다닥 달려가 챔질을 하니

    제법 힘을 쓰며 20cm는 넘을 듯한 꺽지가 끌려나오고 연이어 이어진 입질에 돌고기와 동사리 몇 수를 만나다보니

    동산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이제 슬슬 철수준비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쯤 시끄러운 전화벨소리가 홍천강에 울려 퍼지고 전화를 받아보니

    친구 찌발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찌발이 : 어디에 있냐?

     

    바다하늘산 : 홍천강에서 낚시하고 있는데 하니 평택호에서 철수해 지금 남한강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남한강에서 보잔다.

    알았다.         ^^

    그럼 남한강에서 보자. 하고 전화를 끊고 긴긴밤 외롭지 않게 찾아와준 꺽지와 돌고기, 얼룩동사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서둘러짐을 정리해 홍천강을 빠져나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국도를 달려 남한강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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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다오의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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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3시경 ...

     

     

    친구 찌발이와 만나기로 한 남한강 포인트에 도착했다.

    친구 찌발이와 붕어여신님, 친구 물방개, 삼다수님, 풍류 선배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 낚시를 할 포인트를 돌아본다.

     

    잠깐 짬 낚시에 여러 대의 낚싯대를 펴기도 그렇고 생자리를 작업해 낚시를 하는 것도 조금 오버하는 것 같고

    짐을 가지러 간 친구 다오에게 전화를 하니 저녁 늦게 도착 할 것 같다며 자기 자리에서 밑밥도 줄 겸 낚시를 하고 있으란다.

     

    나야 편하고 좋기는 하지만 ...

    친구 다오의 부탁이니 그럼 어쩔 수 없이 다오 낚싯대로 몇 시간 낚시를 해봐야 될 것 같다.







    친구들의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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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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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보트와 제트스키가 수면위를 내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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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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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찌발이의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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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하게 친구 다오의 포인트에 앉아 낚시를 즐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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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황금붕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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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싱한 지렁이와 옥수수를 끼워 포인트에 찌를 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측 물수세미 사이에 있던 3.2칸 찌가

    3마디쯤 밀려올라와 멈칫거리고 강하게 챔질을 하니 7치쯤 되어 보이는 예쁜 붕어가 첫수로 인사를 하고

    연이어 이어진 입질에 9치쯤 되어 보이는 예쁜 황금붕어가 제법 힘을 쓰며 끌려나온다.

     

    친구 찌발이도 점심 식사를 하고 포인트로 돌아와 낚싯대를 편성하고 친구 밤처사도 들어와 우측 포인트에서 낚싯대 편성을 한다.

     

    날씨도 따듯하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오고 탁 트인 시야에 풍경도 멋지고 참 낚시하기 좋은 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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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트낚시를 하는 조사님들도 지나다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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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 선배님과 춘배 선배님, 친구 밤처사와 붕어여신님의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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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찌발이도 예쁜 붕어를 만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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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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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수의 예쁜 황금붕어를 만나다보니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오후 18시를 넘어서고

    예쁜 붕어도 몇 수 만났고 찌 맛, 손맛도 보았으니 이제 그만 철수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쯤 붕어여신님이 저녁을 먹으러 오란다.

     

    붕어여신님이 차려준 저녁을 맛있게 먹고 친구들과 선배님들과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아쉬운 이별을 하고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강로를 달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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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거미가 내려앉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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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모여 맛있게 저녁을 먹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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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부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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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안개가 낀 홍천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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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몰나무가 멋진 저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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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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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한 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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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

    낚시인들에게는 최고의 계절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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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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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시 : 2017년 10월 5일 ... 7:00 ~ 10월 7일 ... 21:00 ... *

    * 날 씨 : 낮에는 여름날씨, 비, 밤에는 가을 날씨 ...*

    * 장 소 : 강원도 홍천 홍천강, 경기 여주 남한강 ... *

    * 칸 대 : 4.4칸 ~ 5.0칸 ... 총4대 ... *

    * 수 심 : 90cm ~ 2m ... *

    * 조 과 : 꺽저기(꺽지), 얼룩동사리, 돌고기 ... *

    * 미 끼 : 지렁이, 캔 옥수수, 돌고기, 메뚜기, 기름종개 ... *

    * 주어종 : 붕어, 잉어, 꺽지, 동자개, 메기, 쏘가리 ... *

    * 요금 : 0원 ... *

    * 현장상황 : 수온이 떨어져서 중류권으로 가야 될 듯 함 ... *

    * 동행출조 : 풍류 선배님, 춘배 선배님, 강다오, 밤처사, 찌발이, 붕어여신님, 바다하늘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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